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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한 국민의힘 국회의원 프로필 국적 출생지 나이 문자논란

카뷰정보1 2024. 9. 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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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2대 국회의원
인요한
印曜翰 | Ihn Yo-han

 

ㅇ 영문명 : John Alderman Linton
                  존 올더먼 린턴
ㅇ 출생 : 1959년 12월 8일 (64세)
ㅇ 출생지 : 전라북도 전주시 예수병원
ㅇ 국적 : 대한민국

ㅇ 거주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ㅇ 현직
 - 제22대 국회의원
 - 국민의힘 최고위원
 - 국민의힘 의료개혁특별위원장
 - 재단법인 천리포수목원 이사장
 - 한국국제협력단 자문위원
ㅇ 유튜브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EC%9D%B8%EC%9A%94%ED%95%9C-k4u?app=desktop

 

인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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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의료인 출신 정치인으로, 국민의힘 소속 제22대 국회의원이다. 1991년부터 2024년까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장을 역임했으며, 1993년 한국형 엠뷸런스를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유진벨재단을 설립하고 대북지원 활동도 해왔다.

영어명은 존 린턴(John Linton)이며 한국어명인 인요한에서 성씨 인은 자신의 영어 성씨 린턴에서 린을 두음법칙을 적용해 인으로 한 것이다. 존이라는 영어 이름은 요한에서 유래한 것이며 한국어 성경에는 요한으로 부르기 때문에 그대로 붙여서 만들었다고 한다. 2012년 귀화하면서 얻은 성씨와 본관은 순천 인씨이다.

 

2. 생애

 

1959년 12월 8일, 대한민국 전라북도 전주시 중화산동1가(現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1가) 예수병원에서 미국인 아버지 휴 린튼과 어머니 로이스 린튼 사이에서 5남 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전라남도 순천시로 이사하여 유치원과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고, 이후 대전광역시에서 외국인학교를 다니며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4년간 가정의학과 전문의 과정을 수료했다.

부모가 모두 미국인이라서 원래는 단독 미국 국적이었지만 한국형 구급차 개발 등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특별귀화하여 한국 국적과 미국 국적을 모두 가진 복수국적자가 되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당선 이후 대통령인수위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맡았고, 2015년에는 한국보건재단 4대 총재를 역임하였다. 이후 2023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3. 가족사

 

인요한의 진외증조부 유진 벨은 스코틀랜드계 미국인이며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로 1895년 4월 8일 한국에 파송되어 광주·목포 지역에서 활동하며 학교와 병원을 설립한다. 그의 딸 샬롯 벨은 인요한의 친할아버지 윌리엄 린튼과 결혼한다. 윌리엄 린튼은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났으며 22세 때인 1912년 한국에 와서 48년간 전주와 군산 일대에서 선교와 교육, 의료봉사를 해왔다. 백범 김구 선생의 주치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고 3.1 운동 당시에는 기미독립선언서 작성 참여와 운동의 지원, 해외에 홍보를 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이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은 적 있는데, 그 공로가 인정되어 2010년에 3.1 운동 91주년 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국가보훈처 보도자료


1998년 2월 8일 KBS <일요스페셜>에서 방영된 '한국과의 기막힌 인연 - 린튼네 사람들'.

https://youtu.be/65Xcb3Evv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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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휴 린튼은 윌리엄 린튼의 3남이다. 할아버지의 선교활동 영향으로 전라북도 군산에서 출생하였으며, 미국으로 건너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휴 린튼의 형이자 인요한의 큰아버지인 윌리엄 린튼 주니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태평양 전역에서 일본에 강제징용된 한국인 노무자들에게 항복 권고 방송을 하기도 했고, 포로로 잡힌 한국인 노무자들을 돌보기도 했다. 이후 신학대학을 다니던 중 한국전쟁 소식을 듣고 해군장교로 복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였다. 이후 자신의 아버지인 윌리엄 린튼의 한국 선교활동을 이어받았다. 어머니 로이스 린튼은 미국 플로리다 출생의 미국인이며 신학대를 졸업하고 결혼 후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이주했다. 한국에서 살다가 은퇴 후 노스캐롤라이나주로 이사하여 살았고 2023년 9월 7일 별세했다. 같은 달 23일 순천결핵재활원 부지에 있는 남편의 묘 옆에 유해가 안장되었다.

둘째형 스티브 린튼은 북한 어린이에게 의약품을 보내는 유진 벨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80회 이상 방북했으며 김일성과도 두 차례 만났다.

4대째인 인요한 자신은 2012년에 한국사회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귀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인요한의 형 스티브 린튼(인세반), 5대째인 조카 데이비드 조나단 린튼(인대위), 조카 레이첼 조이 린튼도 독립유공자의 자손에게 부여하는 대한민국 국적을 수여받고 복수국적을 허용받았다. 기사에 인요한의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의 독립운동 기여 공로가 소개되어 있다. 뉴스영상

연세대 의대 동창 인연으로 만난 치과의사 출신의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1남 2녀를 두었으나 이혼했고, 이후 '남장로교 역사'를 주제로 인터뷰를 하러 왔던 한국인 여성과 인연이 되어 재혼했고 1녀를 두고 있다. 여담으로 그녀는 2007년 큰 논란이 되었던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의 피랍자 중 한 명이다. 게다가 “아프칸 피랍보다 한국에서 박해가 더 상처였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피랍자 중에서 큰 비난을 들었다.

2021년 4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인요한의 조카 데이비드 조나단 린튼(한국명 인대위)이 출연했다. 직업은 변호사로 인요한의 첫째 형(데이비드 역크 린튼)의 아들이다.

 

 

4. 정치 성향

 

한국 호남 출신에선 드문 보수주의자로 특히 순천에 영향력을 가진 보수성향 인물들에선 이정현과 같이 현재는 국민의힘 소속이다. 인물중심주의를 지향하며 이 때문에 자신도 가끔 좌파인지 우파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고 인터뷰한 적도 있다.

호남이 고향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호남의 정서와 비슷한 부분도 있다. 후술되어있듯 고향인 호남에 대한 애착을 보이며, 5·18 광주항쟁 당시 전남도청에서 현장을 목격했다. 뉴스위크 등 외신과의 기자회견에서 시민군 통역관을 담당했던 경험도 있다. 방송이나 언론 인터뷰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생전 그와 인연이 있었으며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 때도 노무현을 지지하였으며 참여정부에서 대북 정책 자문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북핵 문제와 대북정책과 관련해 민주당과 정치적인 이견 차이를 띄면서 보수 노선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5일 뒤인 2003년 3월 2일, 대북 자문 목적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독대를 한 적이 있는데 인 박사는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경한 견해를 내세웠지만, 노 대통령은 '우리가 잘하면 그들도 좀 바뀔 것이다'라며 낙관하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이를 계기로 민주당쪽 인사들과 대북정책에서 이견이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본인이 북한 정권이어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의 핵 포기 의사를 낮게 보기 때문인지 대북 온건책도 썩 좋게 보지 않는다. 그러나 제재와 고립을 통한 이른바 북한 붕괴론도 생각이 짧은 것 같다고 비판하는 등 자신만의 노선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 의료지원은 보수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꾸준히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북한 어린이들이 병을 앓지 않고 살기 위해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장선상인지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를 지지했다. 그래서인지 박정희 전 대통령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박근혜 정부 취임 이후엔 박근혜 정부가 자기 기준 자꾸 우경화해서인지 친박계와도 멀어져 일종의 비박계가 되었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으나 탄핵에는 찬성하였고 강성 보수라기보다는 중도 보수라고 볼 수 있다. 이후 대화의 희열에 출연해 말한 바에 따르면, 자신이 박근혜 정권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새누리당에 들어갔지만 착오였다고 밝혔다. 인요한은 결핵 문제 해결을 위하여 의사 자격으로 방북한 경험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잘 살폈고 이를 보수정당이 북한을 제대로 알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이를 추진해보았으나 오히려 당내에서 좌파로 몰리며 힐난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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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23년 이후의 정치 활동

 

2023년 국민의힘의 혁신위원장을 맡은 것을 계기로 정치계에 입문하였다. 이전에도 박근혜의 인수위원회에서 인수위원장을 하거나 국민의 정부-참여정부에서 대북 자문을 맡는 등 간접적인 정치활동을 하긴 했으나, 혁신위원장 영입 이후에는 완전히 직업 정치인으로 전향하였다.

과거부터 정치권에서 영입대상으로 손꼽던 인물이었지만, 정계입문 소식에 의아해하는 반응도 없지 않았다. 예전에 방송 출연을 했을 때 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밝힌 적이 있었고, 혁신위원장 퇴임 이후 인터뷰에서도 선거에는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고사했었기 때문이다.

 

 

5.1.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다른 뜻 아이콘  2023년 10월 23일 출범한 국민의힘의 당내기구에 대한 내용은 인요한 혁신위원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2.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국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하여, 세브란스 병원이 있는 서대문구 갑 출마가 예상되었다. 지역 활동도 활발히 하였고, 우상호도 행사에서 자주 마주쳤다고 한다. 하지만 혁신위원회 험지출마론 주장 과정에서 본인의 출마를 포기했다. 

그러다 2024년 2월 13일, 갑자기 종로 출마설이 제기되었다. 한동훈 위원장이 직접 설득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최재형을 만나 종로 불출마의 뜻을 밝히고, 오히려 "당이 최 의원을 지켜줘야 한다."며 최재형에게 힘을 실어주었다고 한다. 

이후 2024년 3월 들어서는 비례대표 출마설이 돌고 있다. 이미 당에서 비례대표 출마를 제안했고, 본인도 고심 중이라고 밝혔다. 결국 비례대표직 출마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3월 9일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국민의미래 선대위원장 후보에도 거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 3월 18일,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공천에서 당선안정권인 8번을 부여받으며 사실상 국회 입성을 확정지었다.

3월 23일, 국민의미래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동시에 국민의힘 지역구 출마 후보들도 지원 중인데, 선거법상 다른 당적이다 보니 유세를 통해 대놓고 지지해달라는 말은 하지 못 하고 대신 같이 다니면서 인사만 하는 정도. 국민의미래와 관련된 선거 활동이나 방송출연을 할 때는 적극적으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자유통일당에서 '이팔청춘' 구호를 내세우며 자신들을 비례정당으로 선택해달라는 유세를 냈을 때는, 직접 방송에 출연해 이러한 행위를 비판하고 선관위에 자유통일당을 고발조치했다.

2024년 4월 10일 열린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 결과 여유있게 당선을 확정지었다. 이로써 이자스민 의원 이후 역대 2번째 귀화인 출신 국회의원이 되었다.

 

5.3. 제22대 국회의원

국회의원회관 616호를 배정받았으며, 외교통일위원회에 배정되었다. 이는 과거부터 대북지원활동을 오랫동안 해온 경력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선명한 친윤 성향을 띄며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여권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친윤 중진으로 분류되는 원희룡과 함께 러닝메이트로 전당대회에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윤석열에 대한 각종 의혹 제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윤 대통령 부부를 변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김건희의 디올백 관련 의혹 제기가 나올 때 "마피아도 부인, 아이는 안 건드린다"는 말을 했다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물론 같은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을 들었다.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가까운 사이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노골적으로 윤 대통령을 싸고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

국민의힘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호흡을 맞출 러닝메이트 후보로 낙점됐는데, 당초 원 후보의 출마 제안에 거절하다가 결국 출마로 선회했다.

전당대회 결과 원희룡 후보는 낙선했으나 본인은 최고위원으로 당선되었다. 따라서 친윤 후보로써 한동훈 지도부를 적극 견제할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막상 지도부에 들어간 이후에는 기존의 예상과 달리 한동훈 대표를 견제하는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았고, 의대 증원과 관련해서 한동훈 대표와 같은 스탠스를 취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및 의료대란과 관련해 당정갈등이 발생한 이후, 방송에서 "'2026년도 의대 정원 확대를 유예하자'는 한동훈 대표의 제안을 내놓는 과정에서 최고위원으로서 함께 토론했고, 추경호 원내대표에게도 의료대란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의대 증원에 대한 이견으로 인해 윤석열 대통령이 인요한 최고위원에게 격노했다는 풍문 또한 돌았다. 

 

 

5.4. 인요한 문자논란



인요한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5일 한 의사에게 특정 환자의 수술을 직접 부탁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의 문자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인 최고위원은 ‘수술을 잘 해달라’는 취지의 부탁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야당은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이라며 반발했다.

의사 출신인 인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 연설 중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인 최고위원은 의사인 지인에게 “부탁한 환자 지금 수술 중. 조금 늦었으면 죽을 뻔. 너무 위험해서 수술해도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이야”라는 문자를 받았다. 이에 인 최고위원은 “감사감사”라고 답했다.

 

 

6. 호남 사랑, 순천 사랑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  이라는 책을 쓸 정도로 자신의 고향인 전라도에 관한 애정이 깊은 인물이다. 그 중에서도 순천시에 대한 애정이 큰 편인데, 태어난 곳은 전라북도 전주시이지만 어렸을 때 성장한 전라남도 순천시를 자신의 고향이자 뿌리로 삼고 있는 듯하다. 방송에 출연하면 "순천이 우주의 중심입니다."라는 말을 할 만큼 순천에 대한 애향심을 많이 보이고 있다. 그래서 2016년 6월 16일에는 고향 순천시의 순천만국가정원 명예 홍보대사 1호로 위촉되었다.기사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한국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어학당 생활을 했을 때 한국어로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매우 찐한 순천 사투리가 입에 붙어서 고생을 했다고 한다.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한 인요한의 순천 친구들이 회상하는 내용에 따르면, 의사가 되고 나서 한턱 쏘기 위해 친구들을 서울로 초대했는데 덩치 큰 외국인이 찐득한 전라도 사투리로 "아따야~ 오랜만이다잉~"하며 친구들을 반겨 이목이 집중되었다고 한 에피소드부터, 첫 월급으로 부모님 장지갑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들어갔는데 친구들 앞에서 대뜸 "깎아주쇼!" 하는 패기를 보여줬다고 한다. 의사가 되고 나서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고향 말보다는 표준어를 쓰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받아들여 공식석상에서는 되도록 표준어 억양을 구사하려고 하지만 편하게 말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고향말과 고향의 억양이 튀어나온다.

TV는 사랑을 싣고와 집사부일체 인요한 편에서 본인이 밝히기로 어렸을 때는 거의 본명처럼 불린 별칭이 인쨘이였다고 한다. 심지어 학교 상장에도 당시 인쨘이 라고 적힌 것으로 인증. 영어 본명 존 린튼에서 성씨는 할아버지 대부터 린튼씨에서 린을 따와 두음법칙으로 인이라 삼았고, 존이라는 이름은 당시의 외국 발음에 찐한 순천 사투리가 합쳐져서 쨘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인씨네 쨘이 인쨘이라는 뭔가 미국 스타일이면서 찐한 시골풍 이름이였다고 한다.

순천에서 일반 한국 유치원과 한국 초등학교를 다녔다. 다만 당시 인요한의 형들이 한국 학교를 다녔던 바람에 영어를 잘 못하고 한국말을 더 잘했던 경험이 있는 탓에 부모님이 막내 아들 인요한만큼은 영어 교육을 잘 시켜야겠다는 중요성을 느끼셨다고 한다. 그래서 중간에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미국 통신제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홈스쿨링을 통해 이수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부터는 형들을 따라 대전 외국인학교에 진학했지만 미국적인 분위기와 문화 차이 때문에 적응을 못해서 힘들었다고 하였다.

호남의 굴곡진 현대사와 인생을 같이 했다. 대학 재학 중 5.18 민주화운동의 소문을 듣고 광주에 몰래 들어가 당시 참혹했던 현장을 두눈으로 똑똑히 지켜봤고, 시민군의 영어 통역을 맡기도 했다.2006년 프레시안 기사2013년 동아일보 기사 이것이 훗날 전두환 정권에 찍혀서 데모 주동죄로 추방을 당할 뻔했다. 심지어 당시에 냉전 구도 속에서 대한민국 정치적 안정을 바라던 미 대사관 측은 전두환 군부에게 항의편지가 왔다고 하면서 '네가 폭동의 주동자야!'라는 비하를 듣기도 했다고. 당시 외신기자의 영어 통역을 맡은 것을 두고 '당신이 한 일은 통역이 아니라 데모 주동이다. 당신의 조상들이 한국에서 좋은 일을 하여 처벌은 하지 않겠으니 대한민국을 떠나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때 국외추방, 폭동의 주동자로 구속, 경찰에게 감시당하는 조건으로 고향에서 근신하기의 선택지가 있었는데 당시 인요한은 고향 순천 시골을 떠나고 싶지 않아서 고향에서 근신하기를 택했다. 집사부일체에서 푼 회고에 따르면 순천에 남기 위해 군사훈련까지 자처해서 받았을 정도였으니 인요한의 고향 사랑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문무대 훈련을 받고 대한육군협회에서 상을 받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전라도를 배신한 것 같다는 느낌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훗날 보안사 요원이 인요한을 사찰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사찰 정도가 아니라 국가의 요주의 인물로 이름이 올라있었다는 사실, 당시 정보부에서 다시는 못들어오게 일가족 모두를 추방시킬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미국에서 넘어온 할아버지는 3.1 운동을 지원하고 해외에 알린 독립운동 기여자로, 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유엔군 참전용사로, 손자인 인요한은 5.18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알리는데 참여하며 3대가 나란히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참여하고 기여한 역사를 가졌다.

이렇게 전라도와는 인연이 깊었던만큼, 전라도의 정당 지지 성향과는 성향이 정반대인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맡게 되었을 때는 상당히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과거 행적과 배경을 생각해 본다면 전혀 이상한 선택도 아니라는 평가도 많다. 애초에 보수 성향 자체는 10년도 더 전부터 드러내오고 있었다. 다만 주요 직업이 정치인이 아니라 일반인들은 잘 몰랐을 뿐이다. 또한 그의 고향인 순천 지역은 호남 중에서는 민주당세가 상대적으로 약한 편으로, 새누리당 소속의 보수 후보인 이정현 의원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당선시켜준 곳이다. 실제로 이정현 전 대표와 인요한 교수는 같은 순천 사람으로서 친분이 있다. 정확히는 이정현은 고향은 곡성군 목사동면이나 순천주암중학교를 졸업해 순천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19~20대 국회의원 임기를 순천에서 보내 순천인의 정체성도 가지고 있는 것이라서 넓은 의미에서 스스로를 곡성, 순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혁신위원회 위원 선정 과정에서, 천하람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호남 방언으로 '같은 순천 사람끼리 해보자'며 러브콜을 보냈다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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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담

 

한국형 앰뷸런스를 처음 개발한 인물이다. 아버지가 순천에서 교회 자재를 싣고 오다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큰 병원이 있는 광주광역시로 택시를 타고 가다가 택시 안에서 사망했다. 당시에도 앰뷸런스는 있었지만 인요한 자신의 표현으로는 그냥 누워서 가는 택시 기능밖에 못하는 열악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의 지인들이 보내준 돈으로 아시아 토픽을 개조해 병원으로 이송하는 시간 동안 응급처치와 의료기능을 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 앰뷸런스를 순천소방서에 기증하고 구급차 요원을 전문으로 양성하는 훈련을 전국에 정착시켰다. 이후에 개량을 거듭했고 봉고 J2를 기반으로 만든 1톤 트럭형 구급차를 전국에 보급하였다. 대화의 희열에서 요즘 앰뷸런스는 길이가 짧아 구급활동에 적합하지 않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들이 각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과거부터 귀화 제의를 꾸준히 받아왔으나 귀화를 미뤄온 이유는 이중국적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1980년대 5.18 민주화운동와 관련된 문제로 중앙정보부에 사찰당했던 기억 때문에 미국 시민권을 보유함으로써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남겨두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런저런 인연이 있다. 1994년에는 독대한 적도 있다. 그 자리에서 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복하지 않으냐고 따지자 김 전 대통령이 '보복이 도움이 되느냐.'며 자신을 타일렀다고 한다. 그리고 1996년에 김 전 대통령이 배탈이 나서 탈수 증상이 왔을 때 자택에 찾아가 직접 진료한 적도 있다. 이러한 인연 덕에 김 전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되었다. 회고하기를 당시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취임식에 원수나 다름없는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초대한 것을 보고 자신의 정치 성향을 떠나서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2019년, 채널A '길길이 산다' 5회와 CBS '어른성경학교' 49회에 출연해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2018년, KBS 대화의 희열에 출연했다. 명백한 서양인 아저씨의 외모에선 상상하기 힘든 걸쭉하고 구수한 순천 사투리의 진수와 어렸을 때 이야기에서 비범한 스토리텔링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조부가 3.1운동, 자신의 부친이 6.25 전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자신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시민과 외신기자들 사이에서 통역을 했다고 한다. 그의 조상은 119년간 4대에 걸쳐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그의 진외조부 유진 벨(Eugene Bell, 1868~1925) 선교사는 1895년 미국에서 조선에 온 후 전라도 등 남부지역에서 포교활동을 했다. 인요한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린튼은 유진벨 선교사의 사위이다. 린튼 가문과 벨 가문의 선교사들은 한국에서 한남대학교를 비롯한 다수의 교육기관과 의료기관을 세우고 결핵환자, 한센병 환자 등 아프고 어려운 이들을 품었다.
특별귀화 1호 한국인으로 2012년 3월 21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특별귀화는 한국 정부가 특별한 공로가 있는 외국인에게 부여하는 국적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오래 살았다 보니 당연히 완벽에 가까운 한국어를 구사한다. 타일러, 일리야, 다니엘 린데만 등이 인요한과 비슷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이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 한국으로 유학왔으며 후천적인 공부와 노력을 통해 학술적으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쪽이므로, 약간 경우가 다르다. 전남 순천 태생인 만큼 외국인이라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구수한 서남 방언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며, 한국적 정서가 곁들여진 오래된 관용어구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기도 한다. 심지어 의대 석사와 박사 논문을 한국어로 작성했을 정도이다.
본인은 방송에서 하일(로버트 할리)처럼 영어를 잘 못한다고 시청자들을 웃기기 위해 너스레를 떨며 예능용 드립을 치기도 하지만, 사실은 거의 원어민 영어를 구사한다. 실제로 저서에 따르면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미국인 가정교사에게 홈스쿨링을 받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는 외국인학교를 다녔으며, 수련의 과정은 미국 의대에서 마쳤다. 어머니는 100% 미국에서 태어나고 쭉 자란 미국인이므로 자녀들과 영어로 소통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광주 MBC 인터뷰 영상에서 세브란스병원 국제 진료소를 방문한 외국인 환자들과 유창한 영어로 소통하며 진료하는 모습이 나왔고 아리랑TV에서 유창한 영어로 인터뷰하는 영상이 있다. 대화의 희열에서도 자신들의 큰 형들은 영어를 거의 못한다고 예능용 드립을 치기도 했지만, 사실은 형제들도 원어민 영어를 구사한다.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 당시 피해자였던 마크 리퍼트 전 대사를 치료한 의사 중 한 명이다. 
아덴만 여명 작전 이후 석해균 선장을 오만에서 한국으로 이송할 때 이국종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에어 앰뷸런스를 섭외할 수 있도록 돕고 이후에도 급유나 한국 내 이송 등을 도왔다고 한다.
방송인 하일이 필로폰 투약 사건으로 활동을 중단하고 희귀암에 걸렸을 때 치료해준 의사 중 한 명이다. 로버트 할리가 힘들 때 많은 도움이 되어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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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金建希 | Kim Keon-hee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배우자 ㅇ 출생 : 1972년 9월 2일 (50세) ㅇ 주소 : 서울특별시 성동구 명일동 ㅇ 사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중앙로 188 아크로비스타 (서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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